Qualia, Mind-Body Problem (1) by KUDO-J


저런 묘한 석양을 바라볼 때 머릿 속에 떠오르는 그 '느낌', 
처음 먹어 보는 음식 맛에 대한 그 '느낌', 
어디에 심하게 부딪혔을 때의 그 아픈 '느낌' .... 

저와 같은 '느낌'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따라서 '주관적(subjective)'인 것이다. 따라서, '내가 느낀 그것'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고스란히 그대로' 전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 느낌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시도해 볼 수는 있을지언정, (노을 장관을 봤을 때의) 그 느낌 '그대로'를 온전히 전달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단 말이다 - 말했듯이, 나의 감각들을 통해 느끼는 그 느낌들은, 오직 '나'만이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타인'이 느끼는 통증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 예를 들어, 누군가 책상 모서리에 무릎을 쿵! 하고 부딪히는 걸 목격했다고 해보자. 그걸 본 순간 움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움찔은, 그 아픔에 대한 '나의 상상 (혹은 비슷한 나의 경험)'에서 유추된 것일 뿐, '그 사람'이 느끼고 있을 '그 아픔'을 온전히 이해해서 (혹은 똑같이 느껴서)가 아니다. (어쩌면, 그는 사실 그렇게 세게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해서, 이런 말도 종종 하질 않던가 -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뭇 여성들이 겪는) 생리통의 고통을 모를꺼라고. (여성은) 그 고통이 어떻다는 걸 설명해 볼 수도 있고, 그걸 들은 남성은 자신이 겪은 다른 고통들을 떠올리며, 여성의 생리통을 이해해 보려고 이리 저리 궁리를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생리통을 경험하는 그 '여성'의 통증을 그대로 동일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말했듯이, 그게 아픔이든, 장관에 대한 희열이든, 그와 같은 느낌들은 오직 그걸 경험하는 당사자에게만 투명하고 선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주관적인(subjective) 감각 경험'을 총칭, 철학에선 'Qualia' 라 부른다 - 조금 다른 의미이지만, 이 Qualia 라는 걸, Mind 혹은 Consciousness 라 이해 하더라도 큰 오해는 없을 것인데, 이에, 17 세기를 살았던 Descartes (1596-1650)는 그런 Mind 와 우리의 신체(Body) (혹은 신체를 포함하는 여타 '물질'들)은 성질이 완전히 다른 서로 별개의 개체라 생각했었다.

예를 들어, (물질 중 하나인) '컵'은 '공간을 차지'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을 때 경험하는 그 '느낌/생각'은 공간을 차지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컵의 크기는 세로 15cm, 가로 7cm 등으로 측정할 수 있지만, 아름다운 그림에 대한 '느낌/생각'은 그렇게 수치로 환산할 수가 없다.

아울러, '컵'은 '모양'이 있다 - 동그랄 수도, 네모날 수도 있다. 하지만, 노을을 바라볼 때의 내 느낌과 생각은, 그 형태를 말하기 힘들다 - '그냥' 느낌이고, '그냥' 생각일 뿐. Plus, '컵'은 '색깔'이 있다. 하지만, 나의 느낌과 나의 생각은 .... 무슨 색인가?

Mind 와 Body 는 서로 별개의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데카르트의 생각을 일러, 흔히 (Substance) Dualism 이라 부르는데, 이런 데카르트 식의 '이원론'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개념이다 - 뭐, 그런 생각들을 하는/해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몸은 그대로 있고, 나의 영혼이 분리되어, 어쩌고 저쩌고 .... 

근데, 이런 이원론에는 심각한 (철학적/개념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데, 이를 일러 (철학에선) Mind-Body Problem (MBP, 혹은, 좀더 근래의 용어를 쓰자면 Consciousness-Brain Problem) 이라 부른다.

MBP 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 물질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Mind, 즉, '비'물질적인(nonphysical)' 것이라 하는 Mind 가 어떻게 물질적인(physical) Body 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가 ... 하는 것. 예를 들자면 - 컴퓨터 마우스를 만지고 있다가, (마우스가 얼마나 무거운지) '한번 들어 올려 볼까나' 라는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을 통해 '팔'을 실제로 움직여 들 수 있다는 거. 즉, Mind 의 한 작용인 '생각'이 Body 의 한 작용인 '듦'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서, MBP 를 일러 'Causality'의 문제라고도 부른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비'물질적인 것이 어떻게 '물질'적인 것을 움직일 수 있으며, 역으로, '물질'적인 Body 가 어떻게 '비'물질적이라 하는 Mind 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일까? (무릎이 부딪히는 '물질적'인 현상이, '아프다'라는 비물질적인 현상을 유발한다).


Some Questions on How MERGE proceeds by KUDO-J


Chomsky 교수는 2017 년 두 차례의 강연을 통해, Merge 라는 기제의 작동 방식에 대한 오해(?)로 인해 등장하는 Parallel Merge 등과 같은 오용 기제들을 차단하기 위해, Merge 의 정의를 아래와 같이 구체화 시키고 있다:

Given WS, a set of SOs. Let Σ be the shortest sequence (X1, ..., Xn) such that
(i) Xi is accessible, and
(ii) Σ exhausts WS
MERGE (Σ) = {{X1, X2}, X3, ..., Xn}

여기서 드는 의문 둘:

Q1 - 위 정의에서 'shortest' 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Q2 - 위 MERGE 의 정의를 보면, MERGE 는 마치, (WS 가 아니라) Σ 에 적용되는 것 같이 보인다, 의도는 그게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Σ 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 또 하나의 representation 인가, 아니면, MERGE 과정에 대한 단순한 구체화인가? 만약 전자라면, Σ 와 같은 또 다른 독립적인 representation 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가?

Chomsky 교수를 비롯, 이곳 저곳 아는 지인들과 의견 교환 중이다.


교차로 - 미쿡 vs. 반도국 by KUDO-JR


미국의 경우,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곳이면 어김없이 꽂혀 있는 저것:
STOP sign

저 표지판이 있으면, 무조건 '완전히 섰다'가 출발해야 한다. 근데, 교차로가 아무리 한국보다 적다고 해도, 교차로마다 일일이 '섰다가 다시 출발'하자면 귀찮은 법 - 해서, 거의 서는 '듯' 하다가 다시 악셀을 밟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근데, 재수 없으면, 저기 풀숲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경찰에게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저 싸인을 대체로 잘 지키는 편이다.

교차로에, 예를 들어, 차 두 대가 들어올 경우, STOP 싸인 앞에 '먼저' 선 차량이 '먼저' 출발한다 (즉, 한 대가 출발하고나면 이어서 또 한 대, 이런 식으로). 만약, 두 차가 '동시에' 섰다면? - 운전석 기준, '오른쪽 편'에 있는 차량에 통과 우선권이 주어진다.

반도국
동네 근처에 있는 교차로. 뭐, 그렇듯이, (반도국에) STOP 싸인이란 건 없다. 대신, 저와 같이 노란 점멸 신호가 켜져 있다. 근데 말이다 .... 이 쪽 신호등도, 저 쪽 신호등도, 둘 모두 '노란' 점멸등. (사실, 저런 경우, 한 쪽 신호등은 '빨간' 점멸등이어야 한다).

Anyway, 부산 운전자들에게 '한 대씩 차례로 통과'와 같은 개념은 딴나라 북극 이야기 - 해서, 그냥 먼저 들이대는 놈이 장땡이. 그리고, 그 뒤를 바짝 따라 붙은 차량들이 어느 정도 통과하고 나면, 그 빈틈 사이로 다른 쪽 차량들이 쭈욱 들이 밀 .... 


원래부터 꼰대 by KUDO-JR


바로 윗층에는 덩치 큰 고등학생 한 명이 살고 있다 - 근데, 이 녀석은 시시때때로, 자잘한 층간 소음을 유발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엔 뭐가 자꾸 '똑또르르' 하는 소리가 나길래, 참다 올라갔더랬다 - '공 굴리냐?' 힐끗 보아하니, 야구공 비스무리한 것을 들고, 벽에다 던지면서 놀고 있었던 것인데, 그게 바닥에 떨어질 때, '똑또르르' 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얼마 후, '똑또르르'는 사라지거나, 상당히 약해지거나 (바닥에 뭘 깔았나?). 근데, 이젠 주기적으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낸다. 해서, 또 올라갔다 - '전국 노래자랑 준비하니?' 베시시 웃으며, '들려요?' 이런다.

적자 하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게 끝나면 저게 등장하고, 저걸 주의주면 또 새로운 소음을 창조한다. 근데 말이다 ....

쟤가 지금은 '고등학생'이라서, 나이 좀 있는 듯한(?) 아저씨가, '이렇다, 저렇다, 조심 좀 해달라', 이렇게 말을 하면, '들려요?' '죄송해요', 뭐 이러면서 소음을 좀 줄인다만, 쟤가 좀 더 커서,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되어, '나도 먹을만큼 먹었다'라는 생각이 싹트면, 과연 지금처럼 고분고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까? 모르긴 몰라도, 되려 언성을 높일지도 모른다 - '아니, 사람이 사는데 이만한 소리도 안나요?' '그럼, 주택으로 이사가시든가, 아니면, 절로 들어가시든가' .... 이럴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 꼰대로 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 원래 꼰대인데, 나이가 힘이 되고, 무기가 되면, 당당하게 꼰대질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일 뿐.


모르면 by KUDO-JR


1. 1950 년대 중반 즈음 시작된 '현대' 언어학, 그 중에서도 특히 Generative Grammar, Chomskyan Linguistics, Biolinguistics, Minimalist Program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현대) 언어학은, 일반인들로서는 애초에 짐작이 불가한 내용이다.

하지만, '말'은 누구나 한다 (특별한 장애가 있지 않는 한). 그리고, 모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그 능력과 '언어학'이란 학문을 (일반인들은) 종종 혼동한다. 더군다나, 나름 외국어를 공부해 봤거나, 아이들이 말을 하게 되는 과정을 지켜본 자들은, 그런 경험과 언어에 대해 아는 것을 가끔 심하게 혼동한다.

말했듯이, (현대) 언어학은 '짐작'과 '경험'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2. 학문을 하게 되면, 이성(과 합리)의 힘이 극대화 된다 (뭐,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러하다). 근데, 그런 능력(?)이 '일상'에서는 꽤나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된다.

모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 좋은 예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언젠가부터 한국인들 사이에는 '양치질'이 유행하기 시작한 듯하다 - 해서, 점심 시간 즈음 화장실에서는, 양치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심지어는 복도 이곳저곳에 칫솔을 물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지금의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전혀 '이상한' 풍경이 아니다.

미국에 살 때,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되는 여성 K와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K 가 묻는다 - "미국 사람들은 양치질 안 해요?" (중간 생략) K는, 자신이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사무실에서 칫솔을 입에 물고 있었고, 그 모습 그대로 복도를 지나다녔고,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양치를 했었더랬다. 근데, 그 일이 있고나서, 사무실 미국인들의 자신을 대하는 눈빛과 태도가 .... 뭐랄까 .... 무슨 원시인 취급? 혹은, '뭐 저런 몰상식한 인간이 다 있나' 하는 눈총? ... 이었단다. 

모르면, 전혀 모를 수 있다.

미국인들에게 '양치질'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 따라서, 그런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건, 상당히 그렇고 그런 행위다. 좀 심하게 과장하자면, 사람들 앞에서 코파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어려운 상상이 아니다 - 지하철등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화장'하는 것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서로 다른 인식을 떠올려 본다면.

그런 곳에서 칫솔을 입에 물고 동네방네 돌아다녔으니, 그런 눈총을 받을만 했다.

무슨 말이냐 - 공공 장소에서 칫솔 물고 걸어가는 것이 별 이상한 것 없는, 그런 곳에서 생활한 사람은, 그 똑같은 행위가 (과장해서) 원시인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짐작은 거의 하지 못한다.

이성에 눈을 뜨면, 그리고 이성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일상'에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의 강도 또한 심해진다. 그다지 어려운 짐작이 아닐 것이다 - 반도국 어딜가면 이성을 만날 수 있겠는가 .... 를 상상해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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